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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전선진 기자
  • 기획
  • 입력 2019.11.04 10:53
  • 수정 2019.11.05 12:34

형형색색 2화 - 평생 한 사람만을 사랑할 수 있을까?

 

100세 시대, 30대에 결혼해서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함께 한다면 적어도 60년을 넘는 세월을 반려자와 함께 보내게 된다. 그런데 60년의 세월동안 오직 한 사람만 사랑할 수 있을까? 잠시 한 눈 판 연인에게 불안을 느끼지 않을 수 있을까? ‘둘은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로 끝마치는 동화 같은 삶은 과연 진정한 사랑의 마지막 모습일까? 모노가미(Monogamy, 일부일처제)가 아닌 다른 선택지들은 무엇이 있을까.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의 계약 결혼

 

첫째, 그들은 서로 사랑하고 관계를 지키는 동시에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지는 것을 허락한다.
둘째, 상대방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으며, 어떤 것도 숨기지 않는다.
셋째, 경제적으로 서로 독립한다.

프랑스 실존주의 철학의 대표주자 장 폴 사르트르(Jean-Paul Charles)는 입대하기 전 여성해방론자이자 ‘제2의성’을 집필한 시몬 드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에게 2년의 계약결혼을 제안했다.

그들이 첫 만남부터 계약결혼을 전제로 만난 것은 아니었다. 사르트르는 군 입대 전 보부아르에게 결혼을 암시했고, 사르트르가 보부아르의 부모를 만난 후에는 청혼을 해야한다는 의무감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하지만 보부아르는 이를 거절했고, 사르트르는 위의 조건을 건 2년간 계약결혼을 제안하게된다.

사르트르가 군 복무를 마친 후 그들은 프랑스 북쪽 끝과 남쪽 끝에 있는 각각 고등학교를 배정받는다. 그들 사이에는 800km 이상의 거리가 놓여 있었고 이런 상황에 두려움을 느낀 보부아르에게 사르트르는 결혼을 제안한다. 당시 결혼한 교사 부부는 반드시 같은 지역에 배정 받는 것이 원칙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부아르는 이번에도 제안을 거절한다.1)

결국 사르트르는 그들의 계약을 30세까지 연장하자 제안했다. 그들의 결혼은 ‘주체성’과 ‘자유’라는 키워드로 함축된다. 그들의 철학사상에 대한 실천이자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보부아르는 사회 관습에 저항하는 삶을 지향했다. 자유롭고 주체적인 신념을 가진 그녀는 당시 여성이 결혼과 동시에 남성에게 종속되는 사회적 통념을 계약 결혼이란 관계를 통해 저항하고 싶어 했다. 사르트르 또한 인간의 본질은 외부로부터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주체적 존재라고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각자의 삶을 소유하며 사랑을 붙잡아두지 않으려 했다. 삶을 살아가며 지나치는 우연한 사랑마저도 인정하기로 했다고 한다. 물론 그들이 그렇다 해서 완벽하게 인정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들은 사각관계에 빠지기도 하고, 질투에 휩싸여 싸움을 벌이기도 했으며 다른 사람과 결혼을 약속하며 관계가 끝날 뻔한 적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결국 다시 서로에게 돌아왔다. 서로가 없는 삶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으며, 사르트르의 세계가 곧 보부아르의 세계였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시작한 문장을 다른 사람이 끝맺을 수 있을 정도로 그들은 늘 ‘말’이라는 매개체로 끊임없이 서로를 결합시켰다.2)


*

 나의 오랜 친구이자, 모든 주제의 말벗이 되어주는 녹스에게 이들의 이야기를 설명해주었다. 그는 일대일 독점연애를 지향하고 있었으며, 연애의 끝은 결혼이라는 생각을 가진 친구다.

“보부아르는 다른 사람들은 제쳐둔 채 오직 둘이서만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가는 두 사람은 이미 죽어 있다고 말했대. 그들은 권태로 인해 죽는다고.” 3)

“조금 극단적으로 들리네. 그들의 사상은 어느 정도 이해가지만 둘이여서 더 안정적일 수 있는 것 아닌가?”

“음, 그게 인류의 본성적인 것이 아니라는 말이야. 심리학자, 인류학자 하물며 생물학자들이 말이야. 생물학적으로 따져보면 인류에 가장 가까운 침팬지들도 다수의 암수가 뒤섞여 거대한 무리를 이루며 산다하고, 인류학적으로 보면 일부일처제는 25%만이 법으로 지정했고, 과반수가 폴리가미(Polygamy, 일부일처제에 반하는 모든 형태의 혼인) 형태의 삶을 살고 있대.”

“그러니까 처음부터 정해져있던 것은 없다는 거네?”

“그렇지. 독일의 법학자인 옐리네크(Jelinek)가 말한 ‘법률은 최소한의 도덕’이라는 것도 굉장히 포괄적이라 해야 하나, 그 마지노선을 정의하기라는 게 굉장히 까다롭잖아.”

“하긴 2015년에 간통죄가 폐지된 것도 ‘혼인과 가정의 유지는 당사자의 자유로운 의지와 애정에 맡긴다’고 설명했으니까.” 4)


“응. 그를 놓고 ‘마음대로 불륜을 저질러도 되는 것 아니냐’는 인식이 퍼지면 어쩌냐는 우려가 제기되기도 했지만. 법도 추세를 따르는 거니까.” 5)


“그래도 우리나라에선 모노가미가 뿌리내려져 있는 만큼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의 방식은 굉장히 파격적이고 그 인식을 바꾸기는 힘들 것 같아.”

 

‘바람’일까 vs ‘다자연애’일까

 

폴리아모리(Polyamory) : ‘많은’이라는 뜻의 그리스어 ‘폴리(Ploy)’와 ‘사랑’이라는 뜻의 라틴어 ‘아모르(Amor)’의 변형태인 ‘아모리(amory)’의 합성어로, 서로를 독점하지 않는 다자간(多者間) 사랑, 즉 두 사람 이상을 동시에 사랑하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6)


“나, 자기 사랑하는데, 자기 거는 아니다? 난 자기 구속할 생각 없어, 나도 구속당하고 싶지 않고.”

 영화 <아내가 결혼했다> 주연 배우 손예진(인아 역)의 대사다. 역사는 오래되었지만 한국에서는 논해진 적이 거의 없었던 다자연애가 미디어의 주목을 받은 것은 2006년 소설 <아내가 결혼했다>가 세계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되며 2008년 영화화가 되었을 때이다.

 웹툰 <독신으로 살겠다> 또한 다자연애를 다룬다. 6년차 연인인 형민과 유희가 둘의 연인 관계를 유지하며 또 다른 사랑을 인정하는 이야기이다. 여전히 서로를 사랑하지만 연애 초기의 열정은 식어버린 두 사람에게 새로운 연인들은 활력소가 된다. <독신으로 살겠다>는 새 사랑으로 인해 내 연인의 삶이 더 풍요로워진다면 내가 그에게 독점을 요구할 근거는 과연 무엇일 수 있는지 묻는다. 7)


 다자연애에서는 연애당사자를 포함해 3명이 동시에 연애하면 트라이어즈(Triads), 4명이면 쿼드(Quad), 5명 이상은 몰섬(Moresome)이라 부른다.

 다자연애가 ‘양다리’나 ‘바람피우는 것’과 다르지 않게 보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많은 폴리아모리스트들은 다자연애가 바람과는 다르다고 주장한다. 다자연애에서 가장 핵심인 부분은 본인이 다른 사람과 연애한다는 사실을 또 다른 연애상대도 알고 있다는 점이다. ‘동의를 구한 관계’라는 것이다.

 오히려 상대를 속여가면서 바람을 피우는 것보다, 다자연애가 더 건강한 연애 방식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A씨는 “다른 사람이 좋아졌는데, 지금 애인이 싫어졌던 건 또 아니었다”면서 “거짓말하기 싫어 상대에게 동의를 구했고 두 사람과 연애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아울러 다자연애에선 서로를 구속(독점)하지 않는 게, 인간의 본능적 사랑의 형태라고 믿는다. 이는 다자연애를 ‘비(非)독점적 연애’라고 부르기도 하는 이유기도 하다.

 B씨는 “상대를 가지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연애 했을 때는 늘 불안했다”며 “상대를 독점하고 싶어 불안할 바에는 차라리 사랑의 감정에 더 집중하고 싶어 다자연애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사실 폴리아모리는 ‘일부일처제’라는 가족 형태에 대한 저항과 불신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폴리아모리스트는 종교적 또는 역사적 전통에 의해 규범화된 일부일처제가 인간의 본성을 억제하고 있다고 본다. 인류의 25%만 일부일처제를 법으로 정하고 있다는 사실도 폴리아모리스트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활용된다. 그들 시선에선 조선시대의 왕가와 양반가의 첩 제도가 다자연애와 크게 다르지 않다.

 역사 속에서 일부일처제가 ‘표준’이 아니었던 것처럼, 다자연애가 새로운 사랑(가족)의 형태로 인정받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가족학자 스테파니 쿤츠는 “미래에는 (다자연애를 포함한) 더 많은 관계 속에서 살아가게 될 것”이라며 “그 다양성이 감춰져 있다가 이제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8)

 하지만 다자연애를 바라보는 다수의 시선이 곱지 않은 것 또한 현실이다. 많은 이들이 다자연애를 논하는 것에 불쾌감을 느낀다. <아내가 결혼했다>의 리뷰란이나, <독신으로 살겠다>의 댓글창만 보아도 그렇다.

 녹스에게 다자연애를 설명해주었고, 그는 내 이야기에 몇 가지 의문점을 느꼈다.

“독점하지 않는 것이 인간의 본능적 사랑 형태라는 건 잘 모르겠네.”

“왜?”

“누군가를 소유하고자 하는 것 또한 인간의 본능이지 않나? 왜, 연애하면 넌 ‘내꺼’라는 표현을 자주 쓰잖아. 사랑의 표현으로써.”

“음, 다자연애의 기본적인 전제는 질투나 소유욕이 자기애와 관련이 있지, 상대방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되는 감정은 아니라고 본대.”

“아, 그러니까 상대를 사랑해서 생기는 욕망이 아니라 상대를 사랑하며 생기는 자기애는 분리되어야 한다는 거네.”

“응. 일대일 연애보다 훨씬 자기억제적인 느낌이 강하지.”

“나는 다자연애에서 회의감을 느낄 수 있는 또 다른 요소는 안정감이랑 믿음 때문인 것 같아.”

“요컨대 내 편이라는 게 확실하지 않아서인가?”

“응, 나는 결혼을 결심하는 이유가 경제적인 이유도 있겠지만 결국 상대방이 주는 안정감을 더 단단하게 만들기 위해서라고 생각하거든. 그런데 굳이 내 애인이 내가 아니더라도 또 다른 누군가에게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면….”
“그렇게 차차 불신이 생길 수도 있다는 말이구나.”

“맞아. 결국 여러 사람을 만나는 이유도 나에게 없는 것들을 여러 사람을 통해 채우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것 같아.”

“세상에 딱 완벽하게 맞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서로 많은 시간을 들이며 인정하고 채워가는 거지. 네 말대로 그런 욕심을 채우기 위한 연애라면 나는 성장할 수 없을 것 같아.”

“응. 다자연애의 목적이 전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그 부분에 있어서는 네 말에 공감해.”

“다자연애가 지금보다 확장될 것 같다는 생각은 확실히 들어. 이제 결혼이 필수가 아닌 시대에 살고 있으니까. 결국 연애 형태의 다양성이 확장되고 그만큼 일부는 존중받을 수 있지 않을까.”

“맞아. 그러니까 미디어에서 점차 다루고 있는 것이고. 더 오래 전이였다면 정말 상상도 못했을 것 같지 않아?”

“응. 꼭 다자연애를 지향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독점적 연애를 지향한다하더라도 나에게 ‘더 나은 연애’를 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형태의 결합이나 정의되지 않은 형태의 관계들도 충분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아.”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의 계약 결혼에서도, 폴리아모리스트의 다자연애 정의에 있어서도 확실하게 말하고자 하는 바는 같다. 개인의 주체성을 인정하는 것. 사랑을 독점하지 않는 것. 이른바 무소유를 지향하는 것인데, 분명한 것은 어느 것도 ‘옳고 그른 것’이 없다. 일처일부제도에 반(反)하는 것이지만 제도에 선과 악이 없듯, 이 결합에서도 선과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쩌면 완벽하게 이룰 수 없는 목표지향점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주체성과 자율성을 가지며, 독점적인 사랑을 받기 원하는 욕망을 억누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오히려 사랑을 하지 않는 것이, 혹은 자신만을 오롯이 사랑할 수 있을 때 가능한 것이 완벽한 주체성과 자율성을 확립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형태의 사랑들을 실험하곤 한다. 그 일련의 과정을 거쳐 완전한 자신을 가지길 바라는 것처럼.


 1)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의 계약결혼 : 살림지식총서 282
 2) 인디포스트 <사르트르와 보부아르, 새로운 사랑의 형태를 실험하다>
 3) 한겨례21 <“두 사람을 동시에 사귈 생각 없니?” 그날부터 ‘열린 연애’가 시작됐다>
 4) 썸랩리포트 <간통죄 폐지 3년…“그럴 줄 알았어!”vs“이건 의왼데?” - 그때는 알 수 없었고ㅡ 이제는 알 수 있는 사실들>
 5) 이진성 현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재판관들은 “사회에 끼치는 해악이 그다지 크지 않은 경우 국가 권력이 개입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현대 형법의 추세의 추세”라며 “혼인과 가정의 유지는 당사자의 자유로운 의지와 애정에 맡겨야지, 형벌을 통해 타율적으로 강제될 수는 없다”고 판시했다.
 6) 케이 K <새로운관계 – 폴리아모리(Polyamory) - 다자연애를 시작하기 전.>
 7) ㅍㅍㅅㅅ <다자연애, 정확한 사랑의 실험>
 8) 썸랩리포트 <“4명과 연애를 하고 있습니다…바람피우는 게 아니라, ‘다자연애’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