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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인제미디어센터
  • 사설
  • 입력 2019.11.03 17:37
  • 수정 2021.03.12 11:23

(사설) 대자보의 시대, 전자 메일의 시대

“지금은 우리 모두가 힘을 합쳐야 합니다.” 총학생회장 명의의 대자보가 다시 붙었다. 이번 학기 초 “인제가족 구성원들께 드리는 글”이라는 제목의 대자보가 붙은 지 한 달 남짓만의 일이다. 클릭 한 번으로 수천 명의 메일함에 자신의 주장을 고스란히 옮겨놓을 수 있는 디지털 캠퍼스에서 1950년에 시작된 대자보의 시대가 재현되고 있다.

1957년 5월 19일 새벽, 북경대학의 허남정(許南亭)은 구내식당의 회색 벽에 대자(大字. 큰 글씨)로 쓴 벽보를 붙였다. 대학의 공산주의청년단 대표 선출 과정을 질의하는 내용이었다. 이렇게 시작된 대자보는 문화대혁명 시기를 지나는 동안 중국에서 크게 유행하였다. 
언론이 통제되는 상황에서 가진 것이라고는 붓 한 자루밖에 없던 학생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호소하는 거의 유일한 수단으로 대자보를 활용하였다. 1980년대 초까지 중국 대학가를 중심으로 여론을 형성하는 중요한 창구 역할을 담당하던 대자보는 어느 사이 민주화운동이 한창이던 한국의 대학가에도 그 이름 그대로 전파되었다. 8-90년대 대자보를 쓰고 읽는 일은 우리 캠퍼스의 일상적인 풍경이었다.

이번 대자보 사태를 부른 멀고 가까운 원인은 따로 긴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듯하다. 모 교가 매주 월요일 전체 교직원 메일을 통해 제기하고 있는 선거 절차와 후보 검증의 문제, 그리고 이에 대한 찬반 논란이다. 구성원마다 나름의 의견이 있을 터이다. 교수평의회는 성명서를 통해, “월요일 아침마다 받아보는 ○○○ 교수의 충심의 전자우편을 보며 우리의 지성이 죽지는 않았다고 안도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BNIT융합대학의 한 교수는 “우리를 위협하는 결정적인 요소는 외부적인 위기 상황이라기보다는 우리 내부에 있을 수 있음을 생각하게 됩니다.”고 비판의 의견을 전한 바 있다.

찬반 논란과는 별도로 ‘$인제대학교{전체}(00003),$산학협력단{전체}(01773)’를 수신자로 지정하는 전체 메일을 통한 의견 전달 방식이 적절한 지에 대해서도 논의가 필요하다. 이메일 주소는 개인 정보의 일부이다(우리 신문은 2학기부터 발행하고 있는 웹진을 재학생들에게 전체 메일로 전달할 계획이었지만, 관련 부서와 협의 결과 개인정보보호 방침에 위배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결국 포기하였다). 

이런 전달 방식에 동의하지 않는 구성원들도 있을 터이다. 실제로 해당 교수에게 답장을 보내 더 이상 메일을 받고 싶지 않다고 항의한 교수도 있다. 메일을 안 읽거나 삭제하거나 아예 ‘수신거부’를 설정하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메일 수신에 동의하지 않은 구성원 개인에게 거꾸로 책임을 미룰 수는 없다.

선거 과정과 절차의 정당성을 따지는 그 과정과 절차는 정당한 지 구성원들의 합의와 동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21세기 디지털 캠퍼스에서 반세기 이전 중국의 대학에서 시작된 ‘원시적인’ 대자보의 의미를 되새기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