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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상훈 국제어문학부 교수

 

올해 인제문화상 글 부분의 주제는 ‘어른’이었다. 고등부와 대학부에서 시, 소설, 수필을 합쳐서 총 130여 편의 작품이 응모되었고, 개중에는 정말 훌륭한 작품들도 있었다.

먼저 대학부에서는 장수연의 소설 〈바다, 어른〉을 당선작으로, 이동화의 시 〈어른〉과 성채원의 시 〈풀이 흔들려서 바람이 분다〉를 가작으로 뽑았다.

장수연의 〈바다, 어른〉은 고등학교 때 자퇴 경험을 소재로 한 자전적 소설이라고 밝혔다. 이 작품은 짧은 분량 안에서 주인공 바다가 자퇴한 원인이 된 학교 내 따돌림과 자퇴로 인한 우울증, 어머니 및 상담사의 배려와 조언,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운동선수의 꿈을 접고 자퇴한 동호라는 주인공과 동병상련의 아픔을 나누고 위로하다가 둘 다 새로운 각오로 검정고시를 준비하게 되는 과정을 담담하게 서술했다. 어떻게 보면 이 작품은 이야기를 엮고 다듬는 이른바 ‘기술’의 측면에서는 소박하기 그지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심사자는 좌절과 고통을 이기고 정신적으로 성숙해 가는 모습을 훌륭하게 그려 내서 미래에 다가올 ‘밝은 어른의 세계’에 대한 희망을 제시했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단지 서사의 기교만으로 놓고 본다면 서재석의 〈꿈 죽이기〉가 당선작보다 뛰어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꿈과 현실, 시점 등을 상당히 능숙하게 활용한 이 작품은 ‘어른’이라는 공모 주제를 뚜렷이 드러내지 못했고, 서사도 꿈속에서 ‘어둠’을 상징하는 사람을 세 개의 바늘로 찔러 죽인다는, 다소 선정적이고 과도하게 상징적으로 전개된다는 점이 아쉬웠다. 그런데 나머지 낙선작들 가운데 적지 않은 작품들이 이야기 만들기의 기법은 논외로 하더라도 대부분 ‘어른’의 개념에 대해 지나치게 피상적이거나 부정적으로 바라보면서, 심지어 어른이 되기를 거부하는 주인공을 부각하거나 직장과 돈과 출세에만 매몰된 어른 세계의 어두운 면만을 표면적으로 비추는 내용이었다는 점은 조금 우려스럽기까지 했다. 이것은 알고 보면 현실이 긍정적이라거나, 어쨌든 현실을 긍정적으로 보아야 한다는 기성세대로서 심사자가 늘어놓는 상투적인 훈계와는 다른 우려이다. 대학생이라면 이미 ‘어른’ 세계에 발을 들인 상황이니,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현실의 깊은 면까지 냉철하게 바라보고 적극적으로 마주하는 패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어른이 된다는 것이 단순히 입시에서 해방되어 술과 담배를 마음껏 즐기고 이성 교제에서도 아무 거침이 없어진다는 것쯤으로 여기는 태도를 드러낸 몇몇 작품은 상당히 충격적이기도 했다.

시 분야에서는 사실 가작으로 뽑힌 두 작품을 빼고 전반적으로 문학적 수준이 그다지 높지 않았다. 깊은 사색과 언어 표현에 관한 고민이 없이 내던지듯이 나열된 단어들의 집합은 굳이 보수적인 학자의 관점이 아니라 하더라도 다시 눈길을 주기 어려울 것이다. 이런 와중에 이동화의 〈어른〉은 적지 않은 시작(試作)을 통해 단련된 흔적을 잘 보여주었다. 특히 “(…) 조금 커버리기만 한 채로 / 잃고 견디고 포기하고 일어나고 / 어른이 된다는 것을 생각하며”라고 마무리한 부분은 어른이 되기까지 겪어야 하는 성장통과 극복의 의지를 깔끔하게 묘사했다. 또 이 작품과 함께 응모한 〈지나갔을 뿐입니다〉라는 작품도 공모 주제와 거리가 조금 있었다는 점이 아쉬웠지만, 그의 시 창작 수준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입증했다. 역시 가작으로 뽑은 성채원의 〈풀이 흔들려서 바람이 분다〉는 주제의 진지함이 세련된 시적 서술에 깔끔하게 담긴 수작이다. “시간이 흐르니 내가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 내가 살아가기 때문에 시간이 흐른다.”라는 깨달음은 진정 독립적이고 자존적인 ‘어른’다운 삶의 태도를 잘 나타낸 듯하다.

수필 분야에서는 아쉽게 선정된 작품이 없었다. 응모한 작품들은 대개 문학 작품이라기보다는 ‘어른’의 개념과 어른으로서 바람직한 삶을 제시하는 어떤 보고서나 연설문 같은 인상을 받았다. 굳이 문학에 포함하려 한다면 ‘중수필(essay)’에 조금 가깝다고 할 수는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전체적인 주제를 한눈에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로 논리 전개가 뚜렷하지 못한 점을 모든 응모작에 고루 지적할 수 있었다.

고등부에서는 시 부문에서만 두 편의 가작을 뽑았다. 먼저 황혜리의 〈어깨에 올라가 보자〉는 성장의 과정을 동산에 오르는 것에 비유했다. “오를수록 커지는 발의 크기”와 무게를 견디고 정상에서 마주한 삶의 실체를 그다지 큰 기교도 없이 풀어놓아서 오히려 곱씹을 맛을 행간에 담아 놓았다. 그가 함께 응모한 〈월중토에게 남기는 전언〉은 고등학생다운 미숙함이 미소를 짓게 만들지만 〈어깨에 올라가 보자〉가 나올 수 있었던 배경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습작으로 보였다. 배준혁의 〈발〉은 아버지의 발 냄새와 각질을 통해 어른으로서 느낄 수밖에 없는 삶의 무게와 가족에 대한 사랑, 책임감을 고등학교 1학년 다운 소박한 감각으로 담담하게 묘사했다.

고등부에서는 40여 편의 시가 응모되어 있었으나 전반적으로 작품의 수준이 아쉬웠다. 무엇보다도 ‘어른’이라는 주제를 직접적이고 표면적으로 서술하면서 함축과 은유, 상징이라는 시 문학 고유의 수사적 특징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표어나 낙서에 가까운 글들도 적지 않게 포함되어 있었다. 심사자가 보기에는 응모한 학생들 대다수가 1학년이었다는 점으로 인해 이런 현상이 두드러졌던 것은 아닐까 한다.

고등부의 소설은 심사 후에 여러 가지로 아쉬움을 많이 남겼다. 응모작이 많지는 않았지만 사실 노혜진의 〈조명〉과 백수연의 〈회색〉은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평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죽었다가 깨어난 노년의 김종려 씨 이야기를 차분하게 서술한 〈조명〉은 작품의 주제가 ‘어른’이라기보다는 ‘인생’에 더 가까웠다. 또 판타지 소설의 기법을 활용한 〈회색〉은 납치와 성폭력을 경험하고 극복하는 과정을 주세영과 백여주라는 둘이자 하나인 주인공을 활용해서 솜씨 좋게 그려 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연상시키는 등장인물 로나도 상당히 훌륭한 발상이라고 하겠다. 다만 심사자의 입장에서는 이 두 작품의 작가가 고등학교 1학년이라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서사의 기법이랄지 작품의 주제가 너무 노회한 점이 고등학교 1학년에 어울리는 싱싱하고 활기찬 분위기를 기대했던 심사자에게는 불편하게 느껴졌다. 어떻게 보면 심사자의 주관적 편견에 의한 아쉬운 결과일 수도 있겠지만, 이 두 응모자가 장래에 훌륭한 소설가가 성장할 수 있는, 넘칠 정도로 충분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음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