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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유경 편집국장
  • 칼럼
  • 입력 2019.06.24 18:17
  • 수정 2021.03.12 11:29

[기자칼럼] 나의 끝에서 처음을 만나다

‘끝’이란 단어는 언제나 새삼스러운 감회를 곱씹게 만든다. 학보사에서의 마지막 신문 역시 마찬가지였다. 편집팀장으로서의 1년, 편집국장으로서의 한 학기는 결코 순탄했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 이다. 어떤 집단에서든 직책을 가진다는 것, 책임을 가지고 임한다는 것은 홀로 해왔던 어떤 일들보다 무겁고, 때로는 두렵기까지 했다. 더군다나 ‘교내 유일의 언론’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학보사이기에 단 한 순간도 가벼운 마음으로 있을 수가 없었다. 

이 직책에 대한 고민은 스스로에 대한 자책을 불러오기도, 누군가에 대한 미안함을 불러오기도 했다. 긍정적인 면도 물론 있겠지만, 결국 사람이라는 게 욕심이 생기면 더 잘 하고 싶기 마련이고, 그 끝이 다가오면 아쉬움은 늘 남는 것이기에. 40년을 바라보는 학보사에 대한 욕심을 가졌던 나로서는 마지막인 이 기간이 ‘어쩌면 다른 방법이, 더 좋은 방법이 있지 않았을까’라는 후회로 얼룩져있었다. 그러던 중, 마치 누군가가 조작이라도 한 것 같이, 마법처럼 일어난 순간이 있었다. 

몸이 안 좋아 이리저리 병원을 찾다가, 생전 가지 않던 길의 낯선 병원에서 만난 의사. 평범한 진료를 마치고, 대화 끝에 나오게 된 나의 학보사에 대한 이야기에 순식간에 묘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던 시선이 아직도 선명하다. 의사는 익숙한 단어를 꺼내듯 학보사의 근황을 물었고, 얼떨떨한 표정으로 답하는 내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대체 어떻게 아시냐고 묻는 내게, 딱 한마디의 대답을 남겼다. 

“내가 그 학보사를 만든 사람이니까요.”

그 순간 느꼈던 감정은 아직까지도 설명하기가 힘들다. 나는 아이처럼 목 놓아 울었고, 그는 조용히 기다렸다. 그는 약 40년 전, 이 학보사에 처음 발을 내딛은 사람이었다. 아직도 그의 책장에는 인제대 신문의 축쇄판이 있었고, 그 때의 기억이 선연한 듯 이런저런 이야기를 꺼냈다. 왜 울었는지 물어봐도 되겠냐는 질문에, 사실 너무 힘들었다고, 내 그릇이 작음이 힘들었고, 책임이 무거웠고, 나답지 않아야 함이 버거웠다고. 그래서 후회만 자꾸 하게 된다고. 

조금 더 좋은 일원이 되지 못한 것, 더 현명한 선택을 고르지 못한 순간들, 편집국장으로서 국원들에게 미안했던, 내 욕심껏 잘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후회에 대해 토하듯 털어놓았다. 그 정신없는 상황에도, 그럼에도 선명하게 기억에 남았고, 가장 알맞고 커다란 위로가 되었던 말이 있다.  

“학보사에서의 시간이 너의 대학생활에서, 그저 좋은 기억으로만 남았으면 좋겠다.”
“나 역시 그랬고, 그럼에도 너는 최선을 다했다. 그만하면 됐다.”

그 뒤로 나는 어떠한 후회도, 자책도 하지 않는다. 그저 갑자기 찾아온 인연이 준 위로를 감사히 생각할 뿐이다. 

학보사는 사라지는 추세다. 회색 종이에 찍혀 나오는 검은 글자들은 화려한 스마트폰, 영상에 밀려 찾는 이가 드물다. 나는 그럼에도 이 매체를 사랑했고, 가치있다 생각했으며, 기자들과 함께 취재하고, 여백을 채워나가며, 39년을 이어온 이 회색 종이의 의미를 지키고자 했던 시간을 좋아했다. 앞으로 이 학보사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존재할 지 나로서는 알 길이 없으나 나는 적어도 이 편집국에서 보냈던 모든 시간들을 오랫동안 곱씹어볼 것이다. 그게 쓰던, 달던 내게는 성장의 시간이었고, 소중한 인연을 만난 연줄이 되었으니. 

조금 더 괜찮은 사람이 되었을 거라고 믿고 싶다. 이 학보사에서의 시간들을 정리하며 나는, 우리는 웃고 있다. 이후는 남은 이들의 몫이다. 

무엇보다 감사하고 싶다. 함께 해준 이곳에서의 인연들에게 그 동안 너무나도 고마웠다고, 이후의 시간도 함께 보내고 싶다고. 대학생활에서 가장 든든하고도 밀도 높은 시간들이었다고. 덕분에 학보사에서 지냈던 모든 시간들을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고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