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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영철(역사고고학·16)
  • 칼럼
  • 입력 2019.06.24 16:52
  • 수정 2021.03.12 11:32

[새기다] 100년전 청년들에게 배우자

“모든 조선청년독립단은 우리 이천만 조선민족을 대표하여 정의와 자유의 승리를 얻은 세계 만국 앞에 독립을 이루기를 선언하노라…”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1919년 2월 8일 일본 제국주의의 심장 도쿄에서 식민지 조선의 청년들이 독립을 외쳤다. 엄혹했던 시절 누구도 상상 못한 행동을 감행한 것이다. 그들도 사람이니 준비과정에서 두려움을 느꼈을 테지만, 조국의 독립을 위해 그들은 고통을 무릅쓰고 용기를 냈다. 그런 그들의 행동은 정확히 20일 뒤 조선에서 벌어진 전국적인 만세운동의 전초였다. 

당시 청년들은 나라를 잃고 핍박받으며 냉혹한 시대를 살았다. 조국을 조국이라 부르지 못하는 신세였으며, 현실사회에서 자기의 의견을 낸다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했을 지도 모른다. 전반적으로 볼 때 100년 전의 그들보다 지금의 우리는 더 나은 환경이라 할 수 있다. 우리도 우리 나름대로의 어려움을 갖고 살고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단군 이래 최고 스펙을 가진 세대이지만 일자리를 구하기 힘들다. 그리고 팍팍한 생활로 인해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다는 3포 세대란 용어는 우리를 겨냥한 것이다. 그뿐일까 내집마련, 인간관계, 꿈, 희망 등을 포기한다는 ‘N포 세대’라는 용어가 등장하며 우리 청년의 현실을 한 층 더 ‘지옥’에 가깝게 바라보는 시선이 늘고 있다. 

그런 이 시점에서 100년 전 청년들이 보여준 행동은 우리들에게 큰 과제를 던져주는 듯하다. 어떠한 위기 속이라도 스스로 용기를 낼 것을 말이다. 용기를 낸다는 것이 거창한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환경 속에서 잘못된 것에 대해 생각할 줄 알고 이야기하는 것이 용기를 내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것은 크게 보자면 청년들이 처한 사회적 문제들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될 수도 있고 작게는 최근 불거진 수강신청 시스템 마비 문제, 교양교육 개편 소통 부족에 대한 문제 등과 같이 교내에서 나타난 문제들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것도 해당될 수 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 “학생으로서 이의를 제기하고 이야기할 방법이 없지 않냐, 그러면 학내에서 정치라도 하란 말이냐?”라고 반문할 수 있다. 나는 최근 교내에서 벌어진 일들을 되돌아보면 답은 나온다고 생각한다.

교양과목 및 신입생 수강신청에 관련해서 많은 학우들은 ‘에브리타임’과 ‘인제대학교 대신 전해드립니다’ 등을 통해 잘못된 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다. 그 결과 총학생회는 이러한 의견을 수렴하고 학우들의 서명을 받아 대학본부에 고칠 것을 요구했고 그 결과 대학본부는 그에 대해 응답했다. 바로 이런 점이 용기를 내는 일이라 생각한다. 한 명 한 명의 생각은 작을지 모르나 그것을 여론으로 만들면 그것은 무시 못 할 하나의 거대한 힘이 된다.

100년 전 당시 청년들의 마음에 ‘우리는 끝났어’, ‘독립 못해’, ‘포기할까’ 냉소와 절망만이 가득 차있고 용기를 내지 못했다면 어쩌면 3.1독립운동이라는 역사적 사건이 발생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지금의 우리는 바로 앞에 어려운 현실이 펼쳐졌을 때 ‘우리들이 그렇지 뭐’, ‘달라질게 뭐가 있냐’고 하면서 순응하는 것이 맞는 것일까? 그렇게 밖에 하지 못한다면 바뀌는 것은 없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교내문제든, 사회문제든 어떤 문제든 말이다. 

새 학기다. 우리는 아직 젊으며 아직도 살아가야 할 날들이 많이 있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 생각하고 이야기할 줄 아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생각해야 한다. 우리가 용기를 내면 많은 것이 바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