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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안태선 기자
  • 대학
  • 입력 2019.06.24 16:32
  • 수정 2019.06.25 12:30

자본의 염증을 가라앉히다. ‘미니멀리즘’

장기불황에 소유가 아닌 공유 활성화
법정스님 ‘무소유’ 대표적 예시

A씨의 하루    

물건에는 힘이 있다. 물건은 그 자리에 어떤 간섭도 없이 존재하는데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감정을 느끼게 만든다. 원하는 물건에 대해서 강렬한 소유욕을 느낄 수도 있고, 좋지 못한 추억이 서린 물건에 대해 트라우마를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예술의 한 양식으로 미니멀리즘은 불필요한 것을 제하고 오직 기능만을 남기는 것이지만, 삶의 방식으로서 미니멀리즘은 잡다한 물건들로부터 시선을 느끼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백화점에서 어떤 물건을 보고서 마치 가슴이 그 곳에 붙들린 것과 같은 경험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그 물건을 두고 자리를 박차고 떠난다는 것은 신체 일부분을 잡아 그곳에 고정시켜놓고는 억지로 몸을 옮겨버리려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불안과 고통을 느낀다. 그리고 그것을 손에 얻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가슴 속이 개운해진다. 

이 소비에 대한 실효성과 물건을 얻지 못했을 때의 고통에 대해 저울질하던 A씨는 어느새 집에 도착했다. 작은 원룸의 문을 열고 집에 들어서자 언제 산 지 기억조차 안 나는 잡동사니들로부터 짓누르는 듯한 힘이 느껴진다. 집이 이렇게도 작았던가. 물건들이 이렇게도 많았던가.

방바닥에 제멋대로 흐트러진 옷가지 사이로 그나마 밟을 만한 공간은 있다고 생각했는데 의식하지 못했던 시선을 느끼자 평소의 원룸이 참을 수 없을 만큼 좁게 느껴졌다. 물건들 사이에 끼어들어야 하는 것을 참지 못하고 거리로 나섰다. 수많은 광고판과 가게들이 눈앞을 수놓았다. 소비만을 종용하는 길거리와 생산만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 같은 자신을 교차해서 보니  A씨의 가슴이 답답해졌다.

 

미니멀 라이프란?

미니멀 라이프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그리스의 철학자인 디오게네스를 예로 들 수 있다. 일광욕을 하고 있는 디오게네스에게 알렉산더 대왕이 찾아가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하자 “그저 햇빛이나 가리지 말고, 옆으로 조금만 비켜 서 달라”고 말한 유명한 일화가 남아있다. 이러한 담담한 태도를 보고 알렉산더 대왕은 “내가 알렉산더 대왕이 아니었다면 디오게네스가 되기를 바랐을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현대에 실천되는 미니멀 라이프의 형태는 불필요한 물건이나 일과, 심지어는 인간관계마저도 필요한 만큼만을 챙겨 만족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적은 물건에 따라 생활은 단순하게 변하고, 마음과 생각이 정리되며 삶이 풍요로워진다.

미니멀 라이프가 대두되는 데에는 장기적인 불황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불황이 지속됨에 따라서 현대사회의 직장인들은 전통적인 가족계획인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는 것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었다. 더 나아가서는 연애를 하는 것에 대해서도, 연애 이전에 사람관계에 대해서도 필요한지 고민하게 되었고 집과 자동차를 과연 소유해야만 하는 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다.

인생에 있어 필수적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재고해보는 것이다. 정보통신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물건을 소유하지 않고 공유하는 ‘공유경제’ 역시 태동하였다. 자동차는 렌트해서 필요한 때만 타거나 카풀을 이용하고, 집의 경우에는 매매가 아닌 월세가 강세를 보였다. 여행의 경우에는 에어비앤비와 같이 다른 사람이 내어놓은 빈 집을 이용하는 등 소비는 하지만 소유는 하지 않으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비움’에 대해

‘무소유’라는 저서로 유명한 법정 스님은 그야말로 한평생을 간소화된 생활에 바친 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무소유 중 법정 스님이 물건에 대한 집착을 버리게 된 난초에 관한 일화가 있다. 개울물 소리에 어울려 숲속의 산책을 즐기던 법정스님은 한낮이 되자 눈부시게 쏟아지는 햇볕을 보고 뜰에 내어놓은 난초를 기억해내게 된다.

뜨거운 햇볕에 늘어져 있을 난초가 걱정되어 허둥지둥 집으로 돌아가 보니 난초의 잎이 아니나 다를까 축 쳐져 있었다. 물을 주자 난초는 어느정도 기운을 차렸지만 법정스님은 마음속으로 절절히 집착이 바로 괴로움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난초에게 지나치게 집착해버린 것이다. 며칠 후 놀러온 친구에게 분을 안겨주고는 법정스님은 얽매임에서 벗어났다. 이어서 “내게는 소유가 범죄처럼 생각된다”는 간디의 말을 인용하기도 했다.

 

‘단샤리’의 나라, 일본

일본 미니멀 라이프에 있어 ‘단샤리’라는 것은 마치 경전처럼 전해진다. ‘단’이란 불필요한 물건을 사지 않는 것을 의미하며, ‘샤’는 이미 자신이 가지고 있지만 사용하지 않는 물건을 버리는 것이고, ‘리’는 물건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단샤리(斷捨離) 열풍을 일으킨 야마시타 히데코는 ‘소중한 것은 모두 일상 속에 있다’라는 제목의 에세이를 통해서 미니멀 라이프의 실천적인 방법을 전파하고 있다.

우선 저자는 생활에 있어 집을 정리하는 것이 정신과 생활습관에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 설령 그것이 신발을 정리하는 작은 습관이라고 해도 말이다.

저서에 따르면 집을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물건들은 생각의 흐름을 막는다. 특이하게도 물건을 버릴 것을 종용하는 저자는 ‘말’이라는 주제에 있어서는 말에 무자각한 자신을 깨닫고,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주민에게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네보라 말한다.

이는 단순히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닌, 상대가 존재하고 있음을 인정하는 순서이다. 물건이 지닌 힘을 알고 물건을 버렸다면, 말이라는 것이 가진 힘 역시 인식할 수 있고 상대방에게 건네는 언행에 대해 한번더 고려해보게 되는 것이다.

동시에 “다녀왔어”, “어서 와”, “미안해”와 같은 일견 지나칠 수 있는 간단한 언어들의 힘에 대해 설파한다. “다녀왔어”는 여기가 내가 있을 자리임을 나타낸다. “어서 와”는 여기가 당신이 있을 자리임을 나타낸다. “미안해”라는 말을 뱉기 위해서는 굉장한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저자는 물건에서 벗어나 우리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가치에 대해서 말한다. 우리의 육체와 정신, 관계에 대해 생각할 거리와 생활방식을 환기시킬만한 대안을 제시한다. 과연 막대한 부와 함께 가지고 싶은 물건을 모두 가지는 것이 진정 행복할까? 누군가에게는 답이 될 수 있겠지만 다른 삶의 방식을 살피는 이들에게 저자는 물질의 축적 없이 정신적으로 성장하며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제시한다. 

그 예시로 에도 막부의 ‘미완의 완성’을 들기도 했는데 이는 에도 막부의 기초를 세운 덴카이 승정이 막부의 영속을 도모하기 위해 각 쇼군에게 해결할 과제를 조금씩 남겼다는 것이다. 이미 완성된 것이 약하고, 완성되지 않고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강하다고 말한다.

평생 이어질 수는 없다고 해도 나 자신의 심신과 관계와 언어에 대해 진중하게 고민할 수 있는 미니멀 라이프에 도전해 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