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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안태선 기자
  • 대학
  • 입력 2019.06.24 16:18

디자이너 베이비, 판도라의 상자를 열다

HIV바이러스 매개체 CCR5 제거
WHO, “관련 사항 모두 검토할 것”
유전자 편집 기술, 비용·소요 시간 감소

유전자 편집기술은 공상과학영화의 단골소재다. 돌연변이 슈퍼 돼지의 교배를 통해 태어난 돼지의 이야기 ‘옥자’, 인간 유전자의 편집이 보편화된 미래를 다룬 영화 ‘가타카’, 더 나아가 장기이식용으로 만들어진 클론들을 주제로 한 ‘아일랜드’, 다종과 인간 여성의 DNA가 섞여 만들어진 변종 인간의 성장을 다룬 ‘스플라이스’까지. 그런데 이런 모습을 영화가 아닌 실제상황으로 볼 날이 머지않았다. 현대의 기술이 공상과학영화를 따라잡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중국 남방과학기술대의 허젠쿠이 교수는 “유전자 편집을 통해 쌍둥이 여자아이 2명이 에이즈(AIDS·후천성면역결핍증)를 일으키는 바이러스에 면역력을 갖도록 했다”고 발표했다. 이 연구는 에이즈 바이러스의 매개체가 되는 면역세포 CCR5를 제거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유전자 편집 기술의 원리

DNA란 데옥리시보 핵산(Deoxyribo Nucleic Acid)의 약칭이다. 염색체 내부에서 이중나선의 구조를 이루고 있다. DNA의 이중나선 내부에서는 아데닌과 티민, 구아닌과 사이토신이라는 뉴클레오티드가 각각 짝을 이루어 염기쌍을 이루고 있으며 이들의 내부에 생명의 유전 정보가 기록되어 있다.

인간의 체세포 내에는 23개의 염색체들이 있고, 이중 반수체 염색체를 이루는 염색사 즉 DNA는 30억에 이르는 염기쌍으로 이루어져있다. 때문에 한 개의 염색체는 60억에 달하는 염기쌍으로 이루어진다. 이들 염기쌍이 어떻게 배열되느냐에 따라서 인종, 성격, 유전병 등에 이르기까지 영향을 미친다. 

최근까지는 유전자 편집이 어마어마하게 많은 자본을 필요로 했다. 하지만 3세대 유전자 편집기술로 연구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감소했고, 실험에 필요한 시간 역시 줄어들었다. 이러한 발견 이후 유전체의 정보를 변형시키는 다양한 실험이 진행되었다. 유전자변형색물체(GMO:Genetically Modified Organism)가 그것이다.

기존의 종자개량은 원하는 형질이 있는 개체를 선택하고 반복적으로 교배하여 잡종화시키고 돌연변이를 발생시키는 과정을 통해 이루어졌다. 때문에 자연에서 존재하지 않는 형질을 만들어 낼 수 없고, 실험에 시간이 매우 많이 들어가며 성공의 가능성도 떨어진다.

반면 GMO의 경우 단백질의 염기서열을 수정하여 단 시간에 원하는 형질을 발현시키는 데 훨씬 짧은 시간이 걸린다. 이를 통해 특정 제초제에 면역을 가지는 작물이나, 자연산보다 두 배 빨리 자라는 ‘슈퍼 연어’등을 식품으로 사용할 수 있다.1970년대에는 최초의 시험관 아기가 출생했고 1996년에는 체세포를 복제하여 복제양 돌리가 탄생했다. 

 

허젠쿠이 박사의 유전자 편집 아기

허젠쿠이 박사는 에이즈에 감염된 아버지와 정상인 어머니로부터 태어날 쌍둥이의 에이즈 감염을 막기 위해 HIV바이러스 감염과 관련한 유전자를 배아단계에서 제거했다. 

문제는 윤리적 논란이었다. 전세계적으로 배아단계서의 유전자 조작은 금지되어있다. 본래 연구목적에 한해 허용되었을 때 14일 이내에 폐기되어야 하나, 허젠쿠이 박사는 출산을 목적으로 하였기 때문에 이를 따르지 않았다. 

이는 ‘맞춤형 아기 탄생’의 가능성 우려되는 부분이다. CPR5의 제거를 통해 아기에게 어떤 부정적인 영향이 미쳐질 것인가에 대한 검증이 전혀 없었다. 아기가 실제로 건강할 것인가에 대해 우려가 발생했다. 중국 당국도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조사에 착수했다. 중국 당국은 이에 대해 불법으로 결론 내리고 ‘2016년 인간 배아줄기세포 연구 윤리 지도 원칙 제정’을 무시했다는 것. 개인적인 명예나 이익추구를 위해 당국의 감독을 피해 교묘하게 실험했다는점을 지적했다.

광둥성 정부는 이 사건을 공안에 넘겼으며 형사처벌의 가능성이 점쳐진다. 영국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허 교수가 부패 혐의로 최고 사형까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허젠쿠이 교수에 의해 중국 과학계의 명예가 실추되었지만 인간 유전자 편집에 대해 관심을 갖도록 환기시키는 계기가 되었다고  평가된다.

 

과학과 윤리 사이에서. 

이전부터 인간 세포에서 종양 형성 유전자인 ‘MALAT1’을 제거하거나 심장병을 일으키는 유전자를 배아에서 잘라내는 등의 연구는 수없이 많이 행해졌다. 하지만 허젠쿠이 박사의 연구는 체세포가 아닌 인간의 생식세포에 행해짐으로써 후대에 미칠 영향을 예상하기 힘들다. 

유전자 편집에 관한 합의문(Human Gene Editing: Internatuinal Summit Statement)에 따르면 △세포단계에서의 유전자 편집은 법·윤리적 감독 받을 것 △임상적 적용은 체세포(즉, 다음 세대로 특성이 전이되지 않는 세포)에서만 규제와 엄격한 평가 내에서 승인될 것 △배아 단계에서의 유전적 변형은 인간 유전자 풀의 일부로서 후속 세대에 전달 될 것 등을 경고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마지막 논의사항인 배아 단계의 유전적 변형을 금지하는 이유는 우선 통제 범위 외의 돌연변이가 발생하는 등의 유전자 편집이 발생할 위험이 있으며 광범위한 환경 하에서 이유전적 변화가 가져올 수 있는 해로운 영향을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유전적 개조의 수행은 개인 및 미래 세대 모두에 대한 시사점이 고려되어야 하며 일단 인간 개체군에 도입되면 변형된 유전자가 제거되기 어렵다. 영구적인 유전적 ‘향상’이 사회 불평등을 악화 시킬 가능성과 이 기술을 사용하여 의도적으로 진화한 인간에 대해 도덕적, 윤리적 고려가 충분히 검토되지 않았기 때문에 많은 국가에서 배아 줄기 수정에 대한 입법이나 규제가 금지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젠쿠이 교수는 독단적으로 다시는 닫을 수 없을 ‘유전자 편집 아기’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중국 과학자가 주장하는 세계 최초 ‘유전자 조작 아기’에 대한 위원회를 꾸려 스위스 제네바에서 “과학. 윤리, 사회, 법적 관련 사항을 모두 검토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미국의 국립보건원(NIH)은 2016년 6월 이러한 유전자 가위 기술의 임상시험계획을 승인했다. 다만 인간 배아를 대상으로 한 유전체 교정연구와 관련해서는 연구비를 지원하지 않겠다는 정책을 발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