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교 40주년을 맞아 웹진으로 개편된 인제대신문사(미디어센터)의 11월 창간 지면에는 ‘인제문화상’을 담는다. 많은 대학의 문화행사는, 참가 학생들의 창작 의욕을 고취하며 주최 측에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인제문화상’에도 몇 가지 변화가 있었다. 지역사회와의 연계를 표방한 만큼 인제대 학생만의 축제에서 지역 고등학생 부문이 신설되었다. 그리고 디지털 매체로의 전환은 제35회 인제문화상의 ‘만화’ 부문과 더불어 제36회의 ‘동영상’ 부문 신설로 이어진다.소설 부문의 응모 양식 변경도 눈에 띈다. 기존의 단편소설(이상)의 분량을 요
인제대신문이 벌써 39주년을 맞이하였다니 감회가 남다릅니다. 필자가 현역기자로 활동한 시간이 30여년이 지났으니 그동안 바쁜 시간에 쫓기며 하루하루를 보냈을 후배기자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역사와 전통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며 누군가의 피와 땀 그리고 눈물로 인해 만들어지는 결과라고 생각합니다.그동안 지내온 일 년 일 년의 세월은 시간적 의미를 뛰어넘어 인제대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가는데 증인의 시간 이였으며 내적으로는 새로운 세상을 향한 도전과 응전의 시간 이였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사람으로 본다면 이제 불혹의
우리 대학은 지역과 상생하는 발전 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대내외로 닥친 위기를 지역사회와 함께 극복해야한다고 인식해서다. 총장이 신설하려고 하는 대외·산학협력부총장 직제는 지역사회와 연계를 강화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또한 임기 내 500억 원의 기금을 확보하겠다는 말은 대학의 등록금 의존율을 낮추겠다는 의지로 볼 수 있다. 이달 초 김해시와 손잡고 ‘미래전략기획단’을 출범하여 미래 먹거리 산업을 함께 준비하려는 모습은 지금까지 쌓아온 지역사회와의 교류에 대한 관심을 실행으로 옮기려는 시도다.오늘날의 대학에게는
인제학보(현재 인제대신문) 13호(1984. 09. 26 발행) 4면 모퉁이에는 “여러분의 글을 모읍니다”라는 제목의 공고가 실렸다. 모집분야는 시・소설・수필・논설이었다. 그리고 다음 호인 14호(1984. 11. 30 발행)에 심사 결과가 발표되었다. “제1회 인제 문예 당선작”에는 현재 의과대학 동창회장인 허준(당시 의학2)의 소설 이, 입선작(가작)에는 시 (서인종. 의학1)・(박재영. 의학2)・(정순호. 의예2), 소설 (권혁. 의학1), 수필
지난 1학기에 이 전격 정간됐다. 413호 사설란을 통해 정간 사유를 밝혔으나 사실상 임의 ‘통보’였다. 기자 칼럼과 데스크가 밝힌 사유에 일부 이해되는 바가 있어도 그것은 독자를 우롱한 처사였다. 본래 학기 중 6회 발행에 맞춰 예산을 잡아놓았고, 부족한대로 기자단도 구성돼 있는 상태였다. 그런 플랜이 있었다면 마땅히 약속대로 6회를 발행하면서 다음 학기 종이신문 발행 중지에 따른 이해와 동의를 구하는 여론 수렴 과정을 거쳤어야 했다. 이 당연한 과정을 은 ‘일방적’인 통보로 대신하면서, 독자를 무시하는
알바천국에서 지난달 16일부터 24일까지 전국 성인남녀 480명을 대상으로 ‘책 얼마나 읽으세요?’를 주제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10명 중 7명은 자신의 독서량이 부족하다고 답했다. 독서량이 부족한 것을 알면서도 책을 읽지 않는 이유로는 “책을 읽는 습관이 갖추어지지 않아서”라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우리 대학의 학생은 책을 얼마나 읽을까. 필자는 백인제기념도서관을 이용하는 학부생들의 독서 실태가 궁금해서 이를 알아봤다. 통계를 내보니 최근 5년간 학생들이 읽은 책은 평균 3.64권에 불과했다. 이는 졸업까지 4년이 걸리는
강사법에 강사들이 내몰렸다. 교육부에서 발표한 2019년 1학기 강사 고용현황 분석 자료에 따르면 올해 7천명 이상의 강사가 강의기회를 상실했다. 강사법 시행을 계기로 강사의 열악한 처우를 개선하고자 했던 원래의 취지가 무색해졌다.강사 임용 절차가 급박하게 진행되면서 대학도 몸살을 앓았다. 학생들의 학습권을 침해하지 않기 위해 대학들은 양질의 강좌를 유지하거나 확대해야 하는데 당장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우리 대학의 경우 지난해 2학기 대비해 강좌가 줄고 강좌당 수강생 수가 늘면서 수업의 질 저하가 우려되는 형국이다. 본교는 나름의
지난 개교 40주년 특별호에서 예고한대로 이번 호부터 인제대신문을 웹진으로 발행한다. 대학 구성원 일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급변하는 미디어환경과 구독자 수의 급감에 대응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대학언론으로서 갱생하기 위한 절박한 고민의 결과이자 그동안 여러 어려움을 겪었던 본지의 자구책이기도 하다.과거 학생운동 시절, 학보는 학내 구성원을 잇는 활발한 소통창구였다. 하지만 지금의 학생들에게는 취업과 진로, 자격증 취득과 같은 자기 계발과 관련된 일이 주요 관심사다. 공동체보다는 개인의 삶이 우선시되는 풍조에서 그간 학내 문제
이번 방학에는 중국 대학에서 두 달간 체류할 계획이었다. 청탁받은 논문도 써야 하고 중국어도 공부하려면 대학 숙소를 택하는 것이 여러모로 나을 듯했다. 그렇게 하나씩 방학 준비를 진행하던 중 뜻하지 않게 총장선거관리 위원장을 맡게 되었다. 대학의 구성원으로서 총장을 선출하는 일에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지만, 일정한 직책을 맡아 그 일을 실행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이런 일에 흥취가 없고 경험조차 없는 나로서는 피하고 싶은 자리였다. 하지만 피할 수만은 없다는 생각을 했고, 누군가는 봉사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여 결
1학기 내내 굳게 닫혀 있던 인당관 12층 총장실이 새로운 주인을 맞았다. 방학 중 치러진 선거와 이사회의 의결 절차를 거쳐 나노융합공학부 전민현 교수가 제8대 총장으로 임명되었다. 긴 여정이었다. 지난 해 5월 이후 우리 대학은 일찍이 대학 역사에 없던 새로운 실험을 거듭해왔다. 1년 남짓한 사이에 총장 선출을 위한 선거를 세 번 반복하였고, 학교의 수장은 다섯 번 바뀌었다. 제6대 총장이 재선을 위해 출마하면서 교학부총장 대행체제로, 교학부총장이 두 번째 선거에 출마하면서 다시 의무부총장 대행체재로, 지난해 12월 취임한 제7대
인제대신문은 1980년 11월 전신인 인제소식을 창간한 이후 413호를 발행하며 우리 대학 소통매체로서의 역할을 담당해왔다. 40년을 이어온 비결은 물론 대학 구성원들의 한결같은 지지와 성원에 있다. 이제 우리 신문은 개교 40주년 특별호 발행을 끝으로 격주 지면(紙面) 발행을 잠정 중단하고, 다음 학기부터 지역사회가 요구하는 ‘캠퍼스타운 매체’로 발돋움하기 위한 새로운 길을 가려 한다.한때 1만 인제학우를 위해 1만 부를 발행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최소 발행부수인 4천부를 발행하는데도 3분의 1 정도가 회수되고 있다. 미디어
우리 대학 구성원들에게 차기 총장 선출 방식을 묻는 설문조사가 지난 24일(금)까지 진행되었다. 8대 총장 선출을 위한 여정이 시작된 것이다. 총장 선출을 위한 절차를 1년 사이에 세 번이나 반복하는 초유의 상황이다.지난 해 5월, 차인준 총장이 재선을 위해 선거에 출마하면서 이행 교학부총장 대행 체제로, 다시 이행 교학부총장이 2차 선거에 출마하면서 이병두 의무부총장 대행 체재로, 우여곡절 끝에 선출된 7대 김성수 총장이 세 달 만에 의원면직됨으로써 또 다시 최용선 교학부총장 대행 체재로 이어져오고 있다. 1년 사이 학교의 수장이
‘끝’이란 단어는 언제나 새삼스러운 감회를 곱씹게 만든다. 학보사에서의 마지막 신문 역시 마찬가지였다. 편집팀장으로서의 1년, 편집국장으로서의 한 학기는 결코 순탄했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 이다. 어떤 집단에서든 직책을 가진다는 것, 책임을 가지고 임한다는 것은 홀로 해왔던 어떤 일들보다 무겁고, 때로는 두렵기까지 했다. 더군다나 ‘교내 유일의 언론’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학보사이기에 단 한 순간도 가벼운 마음으로 있을 수가 없었다. 이 직책에 대한 고민은 스스로에 대한 자책을 불러오기도, 누군가에 대한 미안함을 불러오기도 했
한반도의 봄은 올까? 자연의 계절은 녹음이 짙어가고 교실을 비추는 햇살이 더욱 눈부신 완연한 봄날이건만, 70여 년간 얼어붙은 동토의 한반도는 쉽사리 봄을 허락하지 않는다. 물론 전쟁과 냉전과 증오와 대립이 긴 세월동안 켜켜이 쌓이고 쌓여 차갑게 굳어져 버린 중층적 분단체제가 그렇게 쉽게 녹아내리길 기대할 수는 없는 일이다.증오의 시간만큼이나 화해와 협력의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나가려는 노력이 축적되어야 평화로운 한반도, 우리가 그동안 살아보지 못한 그 새로운 계절이 찾아올 것이다.올해는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
국 보스턴의 케임브릿지는 세계적인 대학을 품은 도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하버드 대학교와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가 있다. 찰스강 위로 놓인 노스 하버드 스트리트를 건너면 ‘하버드’에 진입했다는 생각이 든다. 분명 아직 하버드 대학교에 다 도달하지 않았는데도 이미 도착했다 느낀다. 마을 전체가 캠퍼스 같은, ‘캠퍼스타운’형 도시다. 지역 상권은 일류 대학을 품은 도시에 걸맞게 조성됐다. 출판 및 인쇄업이 발달했다는 의미는 지역사회가 지식산업 위주로 성장했다는 말이다. 서점이 즐비하며 과거 학생들이 생활비를 아끼기 위해 설립한 협동조
상해(上海) 노만구(盧灣區) 마당로(馬當路) 306농 4호는 버스를 타고 온 한국 단체 관람객들로 늘 북적인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청사를 보기 위해서다. 정부가 1990년대에 임시정부 청사가 있던 건물을 사들여 새로 단장했다지만, 청사 주변으로는 여전히 주렁주렁 속옷 빨래를 내건 초라한 전통 가옥들이 밀집해있다. 청사 주변을 지나는 상해 시민들은 대단한 볼거리라고는 도무지 있을 것 같지 않은 좁디좁은 골목길을 가득 채우고 입장을 기다리는 한국 관광객들을 신기하다는 듯 구경한다. 3·1운동 직후인 1919년 4월 11일, 의장 이동녕과
최근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는 ‘버닝썬 사건’은 손님과 직원 사이 폭행 사건에서 시작되었다. 단순한 폭행으로 시작되었던 이 사건은 연예인 승리가 연루되어있단 사실이 알려지면서 열기를 더했고, 지금은 중요한 사회적 이슈 중 하나이다. 이화여대에서 부정 입학으로 시작된 사건이 최순실을 잡아낸 것처럼 단순히 클럽에서 벌어진 사건이 대한민국의 그늘을 낱낱이 파헤치고 있다.음지 문화의 대표 주자인 클럽 문화가 사회에 드러난 것은 이번이 처음일 것이다. 음지 문화가 왜 음지 문화라고 불리는가. 양지에 사는 평범한 사람들이 알 수 없게
우리 사회는 저출산·고령화 사회로 진입하고 있는 중이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2분기 합계 출산률은 0.97명 이었는데, 이는 가임기 여성 1명이 낳은 신생아가 1명에 미치지 못함을 의미한다. 이러한 수치는 세계적으로도 최저 수준에 해당한다고 한다. 인구 구성은 대학정책과 긴밀한 연관성을 지니는 것으로 보인다. 출산률이 높고, 젊은이들이 많게 되면, 즉 생산가능인구가 많을수록 고등교육 수요 또한 높을 개연성을 지닌다. 이러한 국민들의 욕구가 정책적으로 반영된 것이 1995년 5월 31일 발표된 김영삼 정부의 ‘5·31 교육개
한 해 뒤 수확하려거든 곡식을 심고, 십 년 뒤 수확하려거든 나무를 심고, 백 년 뒤 수확하려거든 사람을 심으라 했던가. 그래서 교육을 ‘백년대계’라 했던가. 하지만 ‘백년대계’는 고사하고 한 해 뒤 상황도 가늠하기 어려운 것이 개교 40주년을 맞는 우리 대학의 현실이다. 우리 대학이 처한 위기의 원인, 그 원인의 원인을 찾는 일은 물론 필요할 터이다. 원인은 밝히되 같은 잘못을 범하지 않기 위한 거울로 삼자. 두 차례의 총장 선거를 치르고 총장 부재 사태가 반복되는 동안 우리 대학 구성원들은 어쩔 수 없이 어느 편인지를 묻는 시험
‘의원면직.’ 이 네 글자와 함께 우리 대학은 또다시 총장 공백 사태를 맞았다. 세 달 만에 다시 총장실이 비었다. ‘의원면직(依願免職)’은 당사자의 바람에 따라 직무를 면한다는 말이다. 전임 총장의 사퇴 의사를 재단이 수용했다는 의미일 터이다. 그러나 사태는 그리 단순해보이지 않는다. 대다수 보직교수들도 예상 밖이라고 여길 만큼 전격적으로 통보된 의원면직이었다. 6대 총장이 재선을 위해 출마하면서 교학부총장 대행 체제로, 다시 교학부총장이 7대 총장 선출을 위한 2차 선거에 출마하면서 의무부총장 대행 체재로 이어졌다. 이번에 7대